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심리학으로 사랑하다

인생을 향한 우리의 오해와 행복을 향한 첫 걸음

by RAE_O_KIM 2020. 7. 15.

눈을 떠 보니 세상에 나와있다.

그렇게 숨을 쉬었고 그렇게 눈을 떴다.

첫 호흡의 순간과 밝게 빛나는 세상의 첫 모습은 어땠을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지만

어쩌면 그 모습은 우리가 아름답다고 하는 단어 그대로의 뜻을 품고 있진 않았을까?

 

그렇게 태어났지만 사실 삶이란 건 잘 모르겠다 

 

인생이란 무엇이고 삶이란 무엇일까?


 

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인생을 오해하고 있음을 잘 모르고 살아간다.

 

 

딱히 힘든적도, 아팠던 적도, 대인관계로 인해 힘든 적도 없었고,

위 일련된 일을 겪고도 인생과 삶의 의미에 대해 철학적 사고를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.

 

그저 이 힘듦에서 빨리 벗어나기를

이 아픔에서 벗어나기를

이 외로움에서 그저 벗어나기만을 고집했겠지...

 


우리는 한 번쯤 엄청 힘들어도보고

아파도 보고, 대인관계로 외로움도 겪어보며

철학적 사고를 통한 인생의 의미에 대해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.

 

사람은 태어나 아파도 보고, 외로워도 보고, 힘들어도 보면서 인생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는

기회를 얻기 때문이다.

말 그대로 인생의 뭔가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.

 

기회라고만 이야기하는 이유는

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상황에서 벗어나 현실에서의 안정감만을 위하기 때문이고

그 안정감은 바로 앞으로의 미래가 당연히 올 것이라 믿는 맹신에서 오기때문이다.

 


 

그래서 우리는 항상 그런 줄 알고 살아간다

내일이라는 미래가 보장돼있다고 살아간다

그러다 아프기라도 하고, 인생에 있어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면

기대했고 무의식적으로 당연하다 여기었던 미래가

한 순간 불확실해진다.

 

그런데 우리는 그게 정말로 "불확실"할 거라 느꼈나?

불확실할 거라 느껴지지 않았다면

 

우리는 아직도 내일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는 보장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.

 

 

내일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고 느껴야 하는 게 맞는데 말이다.

 


그래서

인생을 가장 심하게 오해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
"내일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는 보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"

 

이 생각은 인생은 곧 탄생과 죽음처럼

시작점과 종결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 원인론적 사고가 생각의 밑바탕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.

 

시작점과 종결점 그 사이에 있는 순간순간은 잊은 체 말이다

 


 

그렇다면 삶과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는 게 맞을까? 

어떻게 하면 인생과 삶에 대한 오해를 거둘 수 있을 까?

 

이는 키네시스(운동)와 에네르기아(상태)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.

 

일반적은 운동(키네시스)은 시작점과 도착점이 존재한다,

시작점에서 도착점까지의 과정은 "도착"하기까지의 "미숙"하고 "미완성"의 상태이기에

무의미하고 미성숙한 것이다.

하지만 지금의 상태(에네르기아)는 "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" 그 자체가 "이미 이루어진" 것이다.

 

여행을 예로 들어보자

 

우리가 여행을 위해 집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 

"여행"을 하는 것이다.

여행을 위해 서두르거나 할 필요가 없다 이미 그 순간부터 여행의 시작이니까.

 

여행의 목적을 위해 서두르거나 효율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없다 여행은 그 자체로 즐기고 유영하는 거니까.

 


 

삶과 인생도 마찬가지다.

우리는 삶과 인생을 탄생과 죽음이라는 연상선에 두고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.

그러나 삶과 인생을 탄생과 죽음의 연상선에 두고 이야기한다면 

 

당신의 지금 이 순간은 무의미한 것이다.

죽음이 완성되지 않았기에 당신은 죽음으로써 인생과 삶을 완성시키는 게 돼버린다.

 

하지만 삶과 인생에서 우리는 언제 아프고 언제 병들어 언제 죽을지 모르기에

인생에서의 반환점과 도착의 지점이 어딘지 알 수 없다. 

즉 우리에게 도착지점이란 존재하지만 알 수 없는 것이다.

 

우리가 병들고 아프게 되면 이를 느끼기 시작한다

삶과 인생에서는 도착지점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.

 

 

 

"앞으로 계속 이어질 줄만 알았던 내일과 미래가 어쩌면 지금 이 순간,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겠구나"


그래서 삶과 인생은 시작점과 도착점이 있는 운동이 아닌,

여행과 같고 춤과도 같은 운동인 "에네르기아"가 맞다.

 

한마디로 삶과 인생이란

어딘가에 도달하고 도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

 

지금 이 순간 이 자체가 삶이라는 뜻이다.

 

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의 삶을 행복하게 살고, 내 사랑하는 이들과 즐겁기 위해

노력하고 관심을 기울이며

 

내 마음속에서 하고 싶어 하는 일들을 미루고 미뤄서는 안 된다. 

 


 

그렇다면 일을 미루고, 미루다가 도중에 삶이 멈춰버린다면, 

그 삶과 인생은 무의미한 것이고 아쉬운 것일까?

 

그건 절대 아니다.

 

그 일을 미뤘던 그 상황에도 그 사람은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.

그래서 아픈 사람도, 병든 이도, 그 순간에 살아있음에 멋있고 대단한 것이다. 

삶과 인생은 이렇게 지금 이 순간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.

 


그렇게 우리는 어떤 고통이나 과거에서 온 일에 맞춰서

"왜, 어째서 나에게 이런 일이"라는 물음에서 벗어나

자신의 시선을 자꾸만 미래로 되돌리려는 그 마음에 초점을 맞춰

지금 이 순간을 즐겁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.

-알프레드 아들러-

 

 


 

그래서 사람은 살아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것이다.

삶과 인생의 관점이 에네르기아로 바뀐 이들은(깨달은 이들은)

살아있음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깨닫게 된다.

 

살아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하며

진정으로 더 이상 주변인들이 자신의 적이 아닌 친구로 의식할 수 있게 된다. 

 

그렇게 행복을 밟아갈 수 있게 된다.

 


 

 

우리는 이제 인생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는 열쇠를 가지게 됐다.

열쇠를 통해 문을 열지 말지는 오로지 내 선택에 달려있다.

 

 

급하게 마음먹을 필요는 없다.

열쇠를 쥐고 있는 그 순간도

열쇠를 통해 문을 여는 그 순간도 당신은 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고

노력하는 것이다. 그래서 당신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멋있다.

 

 

그렇게 우리는 인생에 대한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.

 

비탄에 잠긴 노인 - <<고흐>> 번뇌와 비탄은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 일으키지만 번뇌와 비탄 안에서 자신이 목적한 바를 긍적적으로 인식하고자 한다면 번뇌와 비탄은 자신을 성숙시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.